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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본육조단경(26.對法) 내소사 201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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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對法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 지성. 법달. 지상. 지통. 지철. 지도. 법진. 법여. 신회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가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의 법문〔三科法門〕을 듣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雙)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마저 없게 하라. 삼과법문이란 음(陰). 계(界). 입(入)이다. 음은 오음(五陰)이요 계는 십팔계(十八界)요 입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이라고 하는가?
색음. 수음. 상음. 행음. 식음이니라.

어떤 것을 십팔계라고 하는가?
육진(六塵). 육문(六門). 육식(六識)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과 안의 육문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이라고 하는가?
색. 성. 향. 미. 촉. 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이라고 하는가?
눈. 귀. 코. 혀. 몸. 뜻이니라.

법의 성품이 육식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識)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三). 육(六)은 십팔(十八)이니라.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正〕을 포함하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語〕과 직언하는 말〔言〕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 가지가 있다. 유위와 무위. 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음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 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 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과 덧없음이 상대이며, 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 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니라.
유정. 무정의 대법인 어(語). 언(言)과 법(法). 상(相)에 열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계인 무정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데 열 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 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起用)하는가?
삼십 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空)에서 공을 떠나나니, 공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을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空)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 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ᐦ
대사께서 열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ᐦ
열 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 써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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